소통
by conpanna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습관의 이중성

'습관이란 건 무서운 거더군'이란 유행가 가사는 열번도 더 공감이 간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예전 둘이 함께 공유했던 것들에 대해 젖어있는 타성도 그렇고,
그런 거 말고라도 잡다한 반복적 행동양식이 빚어내 어느새 태엽감겨진 놀잇감처럼 조종당해 찾고 행하는 무의식적 사고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늘 함께 걷던 집으로 가는 길을 혼자 걷는 일이 쓸쓸했고,
손을 잡고 둘이 보러가던 영화를 친구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무리를 지어 보러가도 헛헛했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기억보다 나를 더 아프게 쑤셔오는 건...
내 옆에서 사라진 네가 아니다.
바로 안경이다!

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처음 안경을 맞췄다. 당시에는 얄쌍한 금테안경 하나쯤은 써줘야 책 좀 읽는 냄새가 난다싶어 안경하날 손에 쥐고 얼마나 득의양양하게 안경점을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안경만큼 성가신 소지품이 없다는 걸 경험치로 배우게 됐다.

다행스럽게 본인의 나안시력이 X된장은 구분할 수 있는 정도여서 특별히 작게 적은 칠판글씨나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볼 때를 제외하곤 안경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런식으로 피교육 코스를 벗어나고 돈벌이를 하러 나와보니 약간의 껄끄러운 문제가 생겼다. 가끔은 선생님들 인사를 먼저 받아주던 되바라진 학생이었던 나도 이 황량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내쪽에서 먼저 알아서 기어야했다. 난시때문에 저쪽에서 오는 인간들 얼굴이 흐릿흐릿 퍼져보여서 획획 서릿발처럼 무섭게 높으신분들을 쌩까는 일이 결코 자주 발생해서는 아니된다. 

그래서 입사초기 나는 지난 십수년의 세월동안 아주 간간히만 사용하던 1회용 렌즈를 열심히 착용하고 다니며 굽신굽신 눈에 띄는 사람에게 뛰어난 사회성을 보이며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두어달 지나고나니, 만만찮은 렌즈값도 아깝고 이 정도 사회성을 뿌렸으면 됐지 싶은 만족감에 렌즈착용을 끊고 사무실에 안경을 하나 갖다두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예전에 나안시력으로 보는 세상이 익숙해져서 가끔 안경이나 렌즈를 끼고 길을 다니면 사물들이 지나치게 명명백백하게 보여 부담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너무 적나라한 못볼 꼴 본모냥으로 심기가 영 불편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십년이 넘었고, 교정시력으로 세상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건 불과 10개월 남짓인데 난 벌써 안경과 습관의 노예가 되버렸다. 전날 안경을 쓰고 집에 갔다 사무실에 다시 가져오는 걸 깜빡해서 오늘 맨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눈이 침침하고 마음이 갑갑한 게 울화가 약간 치밀려고 한다.

아침부터 잔뜩 미간을 찌뿌리고 모니터를 응시하는 까칠한 심씨에게 건너편 K님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며 조심스레 묻는다. 
급히 캐발랄 모드로 변신한 본인은 '냐하하하, 무슨 일은 무슨'이란 틀에 박힌 지루한 답변을 하며 속으론 그저 습관이 무섭고 더러울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무섭고 무서운 습관 할애비라도 시간이라면 해결해줄 수 있다. 
과정은 괴롭지만 우린 10일이 됐던 10년이 됐던 똑같은 시간이란 간단한 명사하나로  다양한 습관들을 만들어 내고 없앤다.
무섭고도 경박한 습관이로다.
 

by conpanna | 2007/11/28 13:22 | space | 트랙백(1) | 덧글(9)
트랙백 주소 : http://conpanna.egloos.com/tb/350597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ego + ing at 2007/11/28 14:12

제목 : 일상을 지배하는 힘
습관과 불안...more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1/28 14:03
저도 일할때만 안경을 쓰는데, 이게 습관으로 바뀌더라구요. 그러나 새로 부모님이 맞춰 보내주신 안경이 무겁고 코가 아픈 경향이 있어서 습관이 저절리 고쳐지던데요?^^
Commented by egoing at 2007/11/28 14:09
저에게는 손톱을 깨무는 습관이 있는데요. 별별 짓을 다해봤지만, 안고쳐지더군요. 습관에 비하면, 의식은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Commented at 2007/11/28 16: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앙녀 at 2007/11/28 18:54
금테안경시대시군요. 전 전영록뿔테 얼굴반은 덥는 안경시대에요.
26년간 쓰던 안경을 벗어버린지 7개월된 저는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을 찾거나 무언갈 하다가 안경올리는 시늉을 한답니다.
Commented by conpanna at 2007/11/28 21:59
bluexmas님, 그럼 저도 안경다리에 공기돌 두개씩 매달아 볼까요? 사실 또 한두달 멀리하다보면 안경 안쓰는 습관이 다시 생길텐데 ^^

egoing님, 전 입술각질 집어뜯는 못쓸 버릇이 있어요. 집어 뜯다 피가나면 손이며 손톱에 피까지 묻혀가며,,돌+아이가 따로 없죠. 의식과 무의식을 제어하는 제3의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요!!

앙녀님, 전영록의 잠자리 안경이 유행하던 시절엔 제가 안경을 쓰기엔 지나치게 훌륭한 시력을 갖고 있었어요. 1993년즈음엔 서전 금테안경이 대세! 히힛, 그리고 맘에 안드는 사람앞에선 고의적으로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렸던 추억도 떠오르네요.
Commented by egoing at 2007/11/29 00:37
의식과 무의식사이를 제어하는 무엇인가가 습관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캐쉬메모리 같은 거겠죠. 연산하지 않고, 기억된 것을 가져다 쓰는 기법.
Commented by conpanna at 2007/11/29 08:54
연산하지 않고, 기억된 걸 가져다 쓴다... egoing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의식과 무의식의 습자지 한장같이 얄팍한 경계에서조차 나의 귀차니즘 사조는 가열차게 활로를 개척하고 있었군요 ㅡㅜ
Commented by egoing at 2007/11/29 10:34
너무 덕후스런 해석이라 살짝 후회하고 있던 중입니다. 캐쉬메모리라니 ㅠㅠ
Commented by conpanna at 2007/11/29 10:41
네..이게 무슨 테러냐구요?!?! 반성하세요;
(뭐, 사실 겸사겸사 하나 배웠어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메모장

최근 등록된 덧글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이글루스